2021. 9. 18. 22:05ㆍ국내여행 이야기/행복한 걷기여행
2021년 9월 18일
추석 연휴 첫날, 그동안 무더위 핑계로 미루었던 '걷기 여행'을 오랜만에 속행했다.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완주하는 일,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아직 한낮에는 해가 뜨거워 덥기 전에 걷기를 끝내기 위하여 아침 일찍 서둘렀다.
아침 8시 반에 남한산성 남문 주차장에 도착했다.
'행복한 걷기여행' 책 따라 하기 여덟 번째 코스다. 책에는 9.5km, 4시간 코스로 나와 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주차장에는 차들이 많았다. 낮시간에 온다면 주차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안내판을 보니 남한산성에는 5개의 탐방코스가 있는데, 나는 오늘 이 5개 코스가 아닌 성곽을 따라 난 길을 한 바퀴 걸었다.
우리는 남한산성하면 380여 년 전 대청항쟁,치욕,인조의 삼배구고두례 등을 우선 떠올리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으로 우리 겨레와 운명을 함께 해 온 1천3백 년의 역사가 흐르고 있는 곳이다.
편의점에서 작은 물병 하나를 사서 배낭에 넣고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 내려와 만난 남문(至和門)이다. 이 남문이 남한산성 4개의 문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홍예문 위로 팔작지붕의 누각이 올려져 있는 형태다.
남문 위 누각
책에는 수어장대와 서문 쪽으로 걷기를 시작하는데 나는 처음에 방향이 헷갈려 반대인 동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으로 걷든 남문으로 원점회귀하므로 상관이 없는 일이다.
성곽 밑에 보행로가 있고 바로 옆으로 샛길이 있어 계단이 많은 가파른 구간에서는 샛길을 이용하기도 했다. 샛길은 숲 속에 있어 햇볕을 피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샛길이 전 구간에 걸쳐 성곽길과 같이 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밖으로 통하는 비밀통로인 암문이 있는 곳에서
오전 9시 40분에 동문에 도착했다.
큰 바위가 있어 폭이 아주 좁은 구간
제법 험준한 지형에 산세와 능선의 굴곡을 따라 병풍을 두르듯 장장 30리에 걸쳐 쌓은 석성이다.
단풍은 거의 들지 않았지만, 무수히 떨어져 있는 도토리를 볼 수 있는 길이다.
장경사 입구, 경내에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이곳까지 차로 직접 올 수도 있다.
이쪽 코스에는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었다.
출발할 때는 기온이 20도 정도로 서늘했으나 급격히 기온이 오르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햇볕이 쏟아지니 무척 더워졌다.
가파른 구간도 많아 땀이 계속 흘러 수분을 보충하며 걸었다. 오랜만에 체력과 의지를 시험하는 시간이었다.
10시 40분쯤, 벤치가 보여 와이프가 챙겨준 것으로 영양과 수분보충을 하며 땀을 식혔다.
연주봉 옹성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요충지에 대한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이다.
서문 바로 전에 다다랐을 때 여러 사람이 모여 성 밖을 보며 웅성거리길래 가까이 가보니 이곳이 서울 시내 뷰가 가장 좋은 곳이었다. 청명한 날씨에 우뚝 솟은 123층 롯데월드타워와 남산타워 그리고 멀리 서울을 감싼 산들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얼핏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인 사람들 눈에는 아파트들 만 보이는 모양이다. 요즘 아파트값 오른 이야기들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시야에 많은 아파트 중에 내 것은 없네...
동영상도 찍어 보았다. 언제나 이렇게 미세먼지없는 대기에서 숨 쉬며 살 수는 없을까?
바로 밑의 서문이다. 북문은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었다.
북문과 서문 사이에 70~90년생 노송 군락이 있는데 수도권에서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한 동창 친구는 이 소나무숲이 좋아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 쪽 코스에는 차는 다니지 않지만 폭이 넓은 산책길이 함께 조성되어 있었다. 어느 구간에서는 성곽길과 같이 가고 어느 구간에서는 떨어져 있다. 동쪽 코스보다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이곳이 남한산성 다섯 개 코스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3.8km 길이의 제1코스인 듯하다.
오전 11시 50분에 수어장대(守禦將臺)에 도착했다. 전에 두 번 와 보았던 곳이다.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이다.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성 안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대하다.
수어장대를 배경으로 혼자 셀카질
'무망루(無忘樓)'란 편액을 보관한 누각이 있었다. 이 편액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수어장대 입구에 있는 멋진 소나무
고향집에 있는 소나무에도 저렇게 지지대를 만들어 주어야겠다.
여기부터 남문까지 30여 분 거리도 난코스다. 큰 산책로를 따라 걸었으면 편하게 마지막 코스를 끝낼 수 있었겠지만, 성곽길을 고집하니 급한 내리막에 계단이 아주 많았다. 다리도 후덜거리고 허벅지에 쥐가 나는 느낌도 약간 있었다. 역시 운동 부족!
오전 12시 45분에 남문 주차장에 무사히 복귀했다. 4시간 15분 걸린 셈
만보기를 보니 11.5km, 18,000보를 걸었다.
점심식사 시간이지만 산에서 간식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도 무엇해서 차를 몰고 나왔다.
반대편으로 들어오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와이프가 차려준 점심을 먹고 노곤하여 꿀 같은 낮잠을 한 시간 가량 잤다.
저녁 때는 딸내미가 '두부강정'을 식탁에 올려 맛있게 먹었다.
수원화성보다 조금 더 힘들겠지 하고 걸었는데, 화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코스였다.
볼거리 많은 수원화성이 부담없는 산책코스라면 남한산성은 체력 테스트를 해 볼 수 있는 등산코스라 하겠다.
좀 힘들기는 했으나 평소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다녀오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