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화성행궁

2016. 1. 3. 18:04국내여행 이야기/수도권 여행

       2016년  1월  3일

 

     주일 미사를 드리고 세 식구가 가까운 수원 시내 나들이를 했다.

오늘 행선지는 조선행궁 건축의 백미라 일컫는 '화성행궁(華城行宮)',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내에 있는 건축물이다.

행궁이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이다.

화성행궁은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으며, 수원부 관아와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794년~96년(정조 18~20년)에 걸쳐 진행된 수원화성 축성 기간에 증축하여 최종 완성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단 점심식사부터 하려고 행궁 반대편에 있는 공방거리로 나왔다.

관광안내소 건물벽에는 화성의 모습이 멋지게 그려져 있었다.

 

주택 담장이 멋지다. 이 거리에서 언젠가 영화도 찍었다고 딸내미가 이야기했다.

 

 거리 가판대에서 파란 머리 리본을 샀다.

 

예쁘네...

 

점심은 떡갈비 정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화성행궁으로 왔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헌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릉원(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대왕이 참배 기간 내 이 화성행궁에 유숙하였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新豊樓)'에서 인증샷

신풍이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의 수원사랑을 보여준다.

 

화성행궁 앞에 있는 홍살문, 

10도까지 올라가는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광장에는 나들이객들이 많았다.

 

신풍루에서 입장권을 내고 들어갔다.

 

수령 600년 이상된 이 느티나무는 화성(華城) 축성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온 신령스런 나무로 소원을 쓴 소원지를 매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딸내미 무슨 소원을 써서 매달았을까?

필시 새해에는 좋은 배필 만나게 해 달라는 소원이겠지...

 

좌익문(左翊門),중양문(中陽門)을거쳐 봉수당(奉壽堂)으로 들어왔다.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정조대왕은 이곳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어드렸다.

영화 '사도'의 마지막 장면이 이 회갑연이다.

 

봉수당 편액

봉수당은 임금 행차시 정전(正殿)으로 쓰인 건물로 중심 4칸을 왕권을 상징하는 편전공간으로 연출하였다.

정조는 어머니의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의미의 당호를 지어 현판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1795년 이곳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진찬 모형

 

역시 봉수당 안에 있는 진찬 모형

 

편전

 

정조대왕의 처소

 

행궁 전체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어 온 초기 건축물, 낙남헌(洛南軒), 봉수당 오른쪽끝에 있는데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연 기간 중 과거시험과 양로연 등의 여러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그런데 많은 건물의 용마루 부분을 사진과 같이 시멘트로 처 발랐는데 원형대로 복원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봉수당에서 오른쪽으로 좀 떨어져 있는 '화령전'으로 갔다.

화령전은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影殿)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달리 영전은 보통 선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생전에 계실 때와 같이 봉안하는 곳이다.

 

정조대왕의 어진

 

신연(神輦), 사도세자가 묻혀계신 현릉원 재실에 봉안되었던 정조의 어진을 이곳으로 옮겨오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가마다.

 

딸내미가 포즈를 잡으란다.

 

다시 봉수당 뒷 뜰로 왔다.

 

많은 행각들

 

글 읽는 환관

 

봉수당 뒤에 있는 장락당(長樂堂),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고 한다.

 

장락당에서 침소에 들기 전 혜경궁 홍씨

 

봉수당 왼편에 있는 유여택(維與宅), 정조대왕이 행차중 잠시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이다.

 

유여택 앞뜰, 땅이 많이 질었다.

 

화성행궁 구경을 마치고 광장으로  나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연을 날리는 사람들, 리모콘 차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 등등, 미세먼지로 공기는 좀 좋지 않은 듯 한데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거대한 독수리연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붕어빵으로 군것질도 하고...

 

화성행궁 옆에 있는 '수원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 들어가 보았다.

작년(2015년) 10월 개관한 미술관이다.

 

1층에 이 미술관을 시의 기증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선친인 (주)현대자동차 설립자 정세영 회장의 업적을 기리는 '포니정홀(PONYCHUNG Hall)'이 있었고, 자동차 개발을 암시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 정세영씨는 1983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회사의 당시 사장이셨다.

 

웃고 계신 '포니 정'의 부조와 엔진 도면, 자동차 선도(線圖) 등,

외국차의 단순 조립에서 벗어나 고유모델을 개발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자동차 기술 독립을 이룬 분,

결국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자동차 강국이 되는데 소중한 씨앗을 뿌린 분이다.

 

자동차 개발 단계에서 사용되는 목형(PROTOTYPE)도 벽에 걸려 있다.

내 직업과 연관있는 전시물들을 보니 흥미로웠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길 너머로 종각(여민각)이 보였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와서 낙남현을 제외한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으며,

이후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3년 10월 1단계 공사가 완료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고, 현재 2단계 공사를 추진중이라고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조의 효심을 느낄 수 있었고,

두 여인과의 분위기 있는 나들이 시간이 되었다.

 

화성행궁 배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