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진주,남원③]진주남강 유등축제①
2016년 10월 2일
오후 4시 쯤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텔에 체크인 한 다음 짐을 풀고 진주성으로 출발했다.
호텔에서 진주성까지는 1km 남짓, 축제로 교통 통제가 되는 곳이 많다고하여 가능한한 행사장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말이 호텔이지 모텔급 숙소, 거기다 3인 예약을 했는데 더블 침대가 1개뿐임을 예약할 때 확인하지 않아 불편하게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주인에게 호텔이 맞냐고 물으니, 객실수가 일정 수준이 넘으면 '호텔'로 허가를 받을 수 있단다. 말하자면 규모가 큰 모텔이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예약했다고 두 사람한테 쿠사리 한번 먹고...
거리에는 축제를 알리는 입간판들과 현수막들이 많이 보였다.
진주성(晉州성)을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 촉석루(矗石樓)와 가까운 촉석문(矗石門)으로 입장했다.
들어가기 전에 세 식구가 같이 포즈 한번 취하고...
사적 118호로 지정된 진주성은 백제 때 건설되었으며, 고려 말 공민왕 때 7 차례 중수되면서 남해안에 출몰하여 분탕질하는 왜구를 방비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군 2만 5천 명을 대패시킨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대첩은 한산도대첩,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으로 유명하다.
드디어 촉석문을 통과
바로 촉석루가 보였는데 올라가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촉석루는 '벼랑 위에 높이 솟은 정자' 라는 뜻이다.
촉석루 현판
촉석루는 1241년(고종 28년)창건하여 7 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지휘본부로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기차기 등 전통놀이 체험행사를 하는 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진주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논개'다.
제2차 진주성 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한 의기(義妓) 논개.
이 지수문(指水門)은 논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의기사(義技祠)로 들어가는 문이다.
의기사에 모셔진 의기 '논개'의 영정
역시 미인이다.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54년에 세워진 '의랑 논개의 비'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순국한 바위, '의암(義巖)'으로 내려가는 길
많은 사람들이 촉석루 바로 아래 남강에 있는 '의암'을 보기 위하여 가파른 계단을 내려왔다.
오른쪽 편평한 바위가 바로 '의암' 이다.
3.65m x 3.3 m 정도 된단다.
두 여성이 끝에 앉아 카메라에 '의암'을 담고 있다.
우리도 많은 관광객들과 더불어 의암이 보이는 강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강바람이 시원했다.
모두가 날이 어두워져 강에 떠 있는 이 많은 아름다운 유등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중...
드디어 진주성과 남강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