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이야기/영남권 여행

[울산 추억여행①]관성해수욕장

여기산 2009. 8. 4. 07:39

2009년 8월2일

 

   "이번 여름휴가에 온가족이 같이 보낼수 있는 기간은 일,월요일 이틀 뿐이네."

"가까운 계곡이라도 가서 발에 물이라도 묻힐까?. "
금요일 저녁 모처럼 네식구가 탁구 한게임 하고 생맥주 집에서 휴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뜬금없이 집사람 입에서 "울산" 이란 말이 튀어 나왔다.
"응, 울산? " "뭐,그러던가" 내가 대답했다. 애들은 그냥 시큰둥하다. 다 큰 놈들이 어디가 됐든 부모와
여행하는 그 자체에 그다지 날뛰듯 좋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속으로 "웬 울산? 가는데만도 차 밀리지 않아도 5시간인데…" 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울산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온지 올 8월이 정확히 14년, 큰아이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옮겼으니 말이다. 집사람은 가끔 울산이 그립다고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숱하게 울산 출장가는
길에 같이 갈까 하기도 했는데 그게 그렇게 또 잘 안되더라.
그런 마당에 감히 "피곤하게 그 멀리까지? 다른데 가자." 라는 말이 나올 수 있으랴.
"으,으, 울산, 그래 좋지. 울산 한번 가보자. 너희들도 좋지?" 애들 입에서 반대의 의견이 나오길
기대하며 애들 입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큰아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내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예,아빠. 나도 내가 살던 동네, 그리고 학교 한번 가보고 싶어요." 
작은 딸내미는 별 반응이없다. 6살에 떠나왔으니 별 기억이 없는 듯 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가족 이번 여름휴가는 울산행으로 결정되었다.
내일 가는것도 아닌데 집에 오자마자 집사람은 바쁘다. 
텐트는 윗집에 주어 버려서 없고 대형 아이스박스는 바자회에 내놓았다나.
그늘막,파라솔과테이블,코펠,가스버너,소형아이스박스 등등
대부분 큰 아이 중학교 때까지 써먹고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물건들이다.
"바닷가에서는 한끼나 두끼정도 때울 건데 뭐 이런거 다 챙기나. 그냥 몸만 가서 사 먹던지 하고, 
대강 놀고 오자." 라고 했지만, 집사람은 막무가네다.
이튿날 역시 시장보고 옷가지 챙기고, 집사람 혼자 바쁘고 신났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도대체 잠을 잔 거야? 몇시부터 일어나 시끄럽게 하는거야?"
4시40분에 일어나니 집사람은 벌써 다 씻고 준비하고 있었다. 3시반에 일어났다나?
잠이 덜 깬 애들을 깨워 차에 태우고 출발한 시각은 5시가 조금 넘어서 였다.

금강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평사휴게소까지는 큰아이한테 핸들을 맡기고 나는 눈을 좀 붙였다.

 

<내려가는 길에 금강휴게소에서 쉬며 한참을 놀았다. 그렇게 급하지 않은 여행이니 느긋하게 다니기로 했다.>

 

10시가 조금지나 울산시내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내 머리속에 있는 일정표대로라면 '관성해수욕장'으로 직행해야 했으나, 가는 길에 시내로 들어갔다.
어느 동네 어귀에서 집사람에게 여기가 어디인줄 아냐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고 했다.
조금 주택가로 더 들어가니, "여보,병영,병영이다!" 하고 소리쳤다.
우리가 신혼살이를 시작하여 약 3년 살았던 동네에 들어온 것이다.
이 때부터 집사람은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시장 어귀에서 집까지 가는 길을 더듬기 시작하는 하는 것이었다.
"저기 미용실이 있었는데..." 저기는 장난감 가게였고, 저기를 종윤이 업고 지날때면 하도 보채, 
나중에는 보자기를 뒤집어 씌우고 뛰었는데,," "저 슈퍼는 그대로 있네,이름은 바뀌었지만"
드디어 살던집, 이층 양옥집에 우리는 2층 전세를 살았었다. 
집사람은 "서동집이었는데,바뀌었네요." 보니 정말 주인이 바뀌었는지 문패가 바뀌었다.
집사람은 많은 추억을 이야기했다.애들한테도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큰 아이는 여기서 찍은 애기때 
사진이 많아 마치 기억이 나는 듯한 표정으로 듣는다.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해수욕장으로 서둘렀다.

 

<우리가 약 3년간 살았던 신혼집>

 

<동네 골목, 집앞에서부터 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다.와이프 여기 살던 때를 생각하며 감회에 젖은 듯...>

동해안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거리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차량이 많았다.
산업도시인 이곳 울산은 매년 이맘때면 기업체들이 일제히 휴가를 실시하기 때문에 그럴것이다.
동해안으로 넘어가는 길도 예전 길이 아니었다. 왕복 4차선의 잘 닦인 길이 새로 생긴 것이다.
여기 있을때 자주 가던 현대자동차하계휴양소가 있었던 '관성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현대자동차휴양소는 이미 주차장이 만차가 되어 바로 옆에 있는 현대미포조선휴양소로
들어갔다.
짐을 풀고 일단 점심부터 준비했다.
밖에 나왔으니 식사당번은 당연히 나와 아들, 쌀과 상추를 씻고, 밥을 짓고,고기를  굽고,,
몇 년 만에 해보는 일이지만, 우리는 익숙했다.
배에 포만감을 느끼며 우리는 가져온 튜브를 들고 바닷물에 뛰어 들었다.
다 큰놈들이 마치 초등학생처럼 좋아했다. 아주 오랫만에 나와 집사람도 그랬다.
놀다 집사람이 준비한 과일을 까먹고 또 놀고 라면 삶아 먹고, 예전에 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결국 우리는 어둑어둑해져서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역시 바다는 푸른 동해바다가 최고...>

 

<바쁘다,바뻐 ! , 아들과 나는 쌀과 야채를 씻어 오고 ...>

 

<역시 꿀맛! 와이프가 준비를 많이 한 덕에 푸짐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물 속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바닷가에서 가족이 사진 찍은 것이 참 오래 되었다.>

 

 

 

<실컷 놀다가 애들은 낮잠을 잤다. 옛날에 애들 어렸을 때 하던 순서 그대로다.>

 

<그리고 종윤은 출출한지 라면을 삶았다.>

 

<그리고 해변에서 한참을 놀았다.>

 

<애들이 음료수병을 세워 놓고 열심히 카메라로 찍더니 이렇게 멋진 작품이 되었네.>

 

울산 시내로 들어왔다. 이제  오늘 남은 일은 저녁을 먹고 숙소를 정하는 일이다.
물론 지인들이 여러명 살고 있지만, 그들에게 연락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아예 떠나기 전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휴가철에 폐 끼치는 것도 그렇고, 사실은 우리 가족만의 여행에 다른 사람이
끼어든다는 일 자체가 내키지 않았다.
울산시내로 들어왔다.
울산의 강남이라 할수 있는 이 곳은 우리가 살던 때하고 너무나 변했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듯, 집사람 연실 놀라는 눈치다. 
내가 한 마디했다."수원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여기는 광역시이고 우리나라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라고,,"
이제  오늘 남은 일은 저녁을 먹고 숙소를 정하는 일이다.
삼산동에 있는 농수산물시장 옆에 있는 회센터로 갔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꼭 먹어야 한다나.. 다들 나보다도 회를 더 좋아한다.
회 한 접시에 술은 이곳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무학소주의 '좋은데이'로 시켰다.
나는 출장와서 이 술을 자주 마시게 되는데, 16.9도로 아주 순해 술이 약한 나같은 사람은 마시기가
좋다. 애들은 싱겁다고 별로 마시지 않는데, 집사람은 무지 많이 먹네. 혼자 두병은 먹은 것 같다.

푹 자려고 그런다나.  그런 소리 않해도 내가 주량을 아는데 뭐 ..

 

 

<'좋은데이' 로 건배>

 

<표정들이 왜 그래 ??>

 

숙소는 근처 모텔을 잡았다.

여러군데를 들어가보고 더블침대 하나에 싱글침대까지 있는 넓은 방을 6만원 주고 구했다.

아들은 방바닥에서 잤다. 그래도 코는 제일 먼저 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