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이야기/수도권 여행

[경기 화성]용주사

여기산 2015. 11. 28. 17:22

     2015년 11월 28일

 

    찌푸둥한 초겨울의 토요일 오후,

수원시내에서 있었던 거래처 자제분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용주사(龍珠寺)에 들렸다.

지난 주 방문했던 융·건릉 바로 옆에 있는 절이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상사로 창건된 절인데, 고려 때 잦은 병란으로 소실된 빈 터에 조선 제 22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790년에 새로 지은 절이다.

정조는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사도세자)의 묘를 천하 제일의 길지(吉地)라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으로 하여금 용주사를 세우게 하여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입구 주차장 옆에 있는 '용주사 가람배치' 안내판

가람배치(伽藍配置)란 탑,금당(金堂),강당(講堂)등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사찰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 사천왕문(四天王門)이다.

보통 사찰에는 일주문(一柱門)이 맨 앞쪽에 있고, 천왕문,금강문,불이문.. 이런 순서로 배치되는데 용주사에는 특이하게도 일주문이 없고 맨 앞에 천왕문이 있었다.

용주사(龍珠寺)란 현판이 보인다. 이 절의 대웅보전 낙성식날 정조대왕이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였다고 하여 이 절의 이름을 용주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천왕문 좌우에 있는 사천왕, 불법을 보호하고 악귀를 막는 분들이다.

 

홍살문, 융릉과 건릉 입구에서 보았던 것과 같다.

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다.

 

삼문(三門)이다.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궁궐양식이다.

 

삼문 좌우의 건축물들

 

좌우로 7칸의 행랑이 있다.

 

삼문을 지나면 경기도 문화재 제 36호인 천보루(天保樓)를 만난다.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5칸,측면 3칸의 2층 누각이다.

목조기둥 아래에는 석조 기둥과 같은 높은 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 궁궐 건축방식을 적용했다.

천보루 앞에는 부처님 사리 2과가 봉안된 5층 석탑이 있다.

 

천보루 왼편에 있는 불음각

 

불음각 안에 있는 범종

 

천보루와 5층 석탑,

불음각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천보루 밑을 통과하니 이 절의 중심전각인 대웅보전과 마주친다.

역시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건물이다.
지붕은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안을 들여다보니 세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뒤쪽과 옆면에는 탱화가 있었다.  이 뒤쪽의 삼세여래후불탱화(三世如來後佛탱화)는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내부는 기도하는 신도들에게 방해될 수 있어 사진을 찍지 않았다.

 

대웅보전 왼편에 있는 범종각(梵鐘閣), 국보 제 120호로 지정된 고려 초기의 범종이다.

 

대웅보전 왼편에서 내려다 본 경내

 

정조대왕이 직접 썼다는 대웅보전(大雄寶殿) 현판

 

처마 모서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호성전(護聖殿)과 부모은중경탑

 

호성전 안에 모셔져 있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위폐(왼쪽)와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폐(오른쪽) 

  

날씨가 쌀살해져서인지 주말인데도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대웅보전 앞에서 인증 샷

 

나오는 길에 만난 한 무리의 학생들, 단체로 역사 탐방차 온 듯하다.

 

용주사는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절로서 정조대왕의 효심을 계승하기 위하여 효행교육원과 템플스테이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짧지만, 부모를 향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음에는 정조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어 주었다는 수원행궁을 가 봐야겠다.

이 회갑연이 영화 '사도(思悼)'의 끝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