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이야기/호남&제주권 여행

[해남,완도,강진③]다산초당/영랑생가

여기산 2015. 6. 22. 10:02

     2015년 6월 21

 

   완도에서 북동방향으로 45km 떨어진 강진으로 차를 몰았다.

일요일이므로 차가 밀릴 것을 예상하여 강진에서는 '다산초당'과 '영랑생가' 두 곳만 방문하고 가능한한 일찍 올라가기로 했다.

 

사장교인 완도대교를 지나며 와이프가 차 안에서 찍었다.

 

운전기사도 찍으셨네.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 입구에 도착했다. 다산초당은 만덕산 자락에 있었다.

만덕산(408m)은 예로부터 차가 많아 '다산(茶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다산초당까지 올라가는 오솔길은 기분좋은 산책길이었다.

 

'뿌리길'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길에 나무 뿌리들이 기묘하게 노출되어 있다.

 

여기는 내가 이름붙인 '돌뿌리 길', 정말 발부리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약 20분쯤 걷는 거리인데 오늘도 역시 오르막길에선 좀 힘들어 하신다.

 

돌계단 끝나는 곳에 나무 사이로 다산초당이 보였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백서사건()에 연루, 유배되어 18년간의 유배생활을 치르던 중 11년간을 보낸 곳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목민심서'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집필하였으며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마루에 앉아 편안한 휴식...

다산초당(茶山艸堂)이란 현판은 추사 김정희선생의 글씨.

 

관광객이 많았다.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여기를 거쳐 백련사까지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련사까지는 1km를 더 가야 한다.

 

다산 정약용 초상화

 

서암(西庵), 학생들 기숙사로 사용되던 곳이다.

 

다시 길을 내려왔다.

길 양편에는 쭉쭉 뻗은 삼나무숲이 있었다.

 

조심조심 ~~

 

다산초당 아래 마을에는 한옥들이 많이 보였다. 한옥마을 같았다.

 

다산초당에서 영랑생가로 가는 길에 읍내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잘 알지 못해 길가 아무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주문했는데 7,000원짜리가 이렇게 푸짐하게 나왔다.

옆자리의 서울에서 온 여행자들도 푸짐하다고 한마디씩 한다. 역시 전라도 음식 인심은 후한가 보다.

 

영랑 김윤식의 생가에 도착했다.

 

영랑생가 전경

영랑은 1903년 이곳에서 출생하여 1930년 박용철,정지용등과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하여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서정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어 '내 마음 아실 이', '가늘한 내음','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서정시를 계속 발표하였고, 1935년에는 첫째 시집인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이곳 강진에서 의거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고 한다.

 

영랑의 대표적인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 의 시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 ..." 언제 배웠던가 ?

모란에 둘러쌓여 있다.

 

사랑채

 

옛날 쓰던 집기들이 보관되어 있다.

 

안채, 뜰에 모란이 풍성하게 심겨져 있다.

 

안방에 전시되어 있는 영랑의 사진 

 

오후 2시에 출발해서 6시반쯤 집에 도착했다. 4시간반쯤 걸렸다.

평소 일요일 오후를 생각하면 수월한 정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내가 운전하고 3분의 1 정도는 와이프가 운전했다.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평소 가 보고 싶었던 곳을 둘러 보았다.

역시 여행이란 가기 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여지지만, 다녀오면 잘 갔다왔구나하는 결론...

 

이번에도 짝지와 함께 한 여행이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