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이야기/영남권 여행

[안동,대구 여행①]하회마을/병산서원

여기산 2015. 3. 8. 17:22

    2015년 3월 7일

 

   이번 주말에는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예년보다 포근한 날씨가 될 것이라는 예보에 와이프와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기는 하지만 일단 그동안 몇번 얘기했던 안동 하회(河回)마을로 목적지를 정했다.

당일치기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혹시 다른 곳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일단 1박을 할 수 있는 채비를 차렸다.

 

  느긋하게 오전 10시에 집을 나서 하회마을 도착 전에 길가 식당에서 안동 특산물인 간고등어 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1시경에 도착했다.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마을 이름을 하회(河回)라고 한 것은 낙동강이 마을을 'S'자 모양으로 감싸 흐르는데서 유래하였다.

 

입구에 있는 하회마을 전시관, 1999년 이곳을 방문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표를 사고...

어느새 마님이 찍으셨네.

 

주차장에서 마을 입구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마을 거주자와 시설 관계자 외에는 전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 버스를 이용하여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버스에서 내리자 가장 먼저 관광객의 발길을 끄는 것은 '하회탈춤 공연장'이었다.

 

스님이 동네 여인네와 정분을 나누는 그런 내용이었다. 해학적인 만담과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흥겨움이 공연장에 가득했다.

 

맑고 포근한 날씨에 한동안 즐거운 시간이었다.

 

30분 정도 관람하다가 마을로 가기 위하여 나왔다.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가을에는 멋있을 것

 

진입로 왼쪽의 초가집들이 정겹다.

마치 기억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내 고향의 옛 모습처럼...

 

멀리서 볼 때 반짝반짝 노랗게 빛나 마치 개나리 울타리처럼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니 어느 고택앞에 잘 정돈된 대나무숲이었다.

 

화경당, 1797년과 1862년에 지어졌다는데 집의 규모가 웅대하다.

 

집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게 통제되고 있었다.

 

초가집들이 모여있는 곳,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들이다.

 

마을 오른쪽으로 나오니 강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나루터가 있었다.

강건너를 보니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있고 오른편에 집들이 있는데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지은 '옥연정사'라고 한다.

 

마을에 있는 골목길

 

삼신당 신목, 수령 600년된 느티나무로 마을 정중앙에 있다. 소원이 적혀진 많은 종이들이 새끼줄에 꽂혀져 있었다.

관광객을 위하여 소원을 적을 수 있는 필기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서 기념 셀카 한 컷 !

 

양진당, 15세기 풍산에 살던 류종혜 공이 이 곳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었다는 풍산 류씨 대종택

 

충효당, 서해 류성룡 선생의 종택으로 평생 청백하게 지낸 선생이 삼간초옥에서 별세한 후 그의 문하생과 지역 사림들이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여 지은 집

 

충효당 바로 옆에 있는 영모각(永慕閣), 서애 선생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한 기념관이다.

 

영모각 안에 계신 서애 선생 모습

영의정을 지냈으며 임진왜란때 이순신과 권율 장군을 천거한 분으로 요즘 TV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징비록' 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마을 안에 있는 매점, 달봉이네

와이프 여기서 물 한병 샀다.

 

마을을 통과하여 강이 있는 곳으로 나왔다.

신록의 계절에 사진을 찍으면 훨씬 괜찮을 듯...

 

마을을 배경으로 가지고 간 삼각대를 세우고 포즈를 잡았다.

 

한옥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있는 정겨운 마을

 

그네가 매어져 있는 곳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갖가지 기념품을 파는 장터

 

와이프는 좋은 소리가 나는 하회탈 종 하나를 기념으로 샀다.

 

선비들이 풍류놀이를 했다는 만송정 솔숲

 

하회마을에서 나와 4 km 정도 떨어져 있는 '병산서원' 으로 갔다.

병산서원은 1572년 이 곳에 세워진 서애 류성룡 선생의 서원이다.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조선시대 서당공부를 마친 유생들을 가르치던 중등 과정의 학교이자, 선현들을 받들어 모시는 제사 공간이었다.

다른 점은 향교는 지방 공립학교였고, 서원은 사립학교였다는 것,

 

제법 많은 차들이 이 곳을 방문하지만, 하회마을에서 이 곳에 이르는 길이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점은 의아했다.

 

진입로에서 본 서원 전경

 

대문에 해당하는 '복례문(復禮門)',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따왔다고 하네.

 

만대루(晩對樓), 선비들이 휴식하며 학문을 논하던 굉장히 넓은 마루이다.

 

만대루 아래의 나무 기둥들

 

병산서원의 중심인 '입교당(立敎堂)' 학문을 논하던 강당이다.

 

입교당 뒷편으로 돌아나오면서 찍었다.

 

입교당과 동재(東齋),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머무는 일종의 기숙사다.

 

다른 관광객에게 부탁해서 한 컷

 

5시반쯤 이 곳 관광을 마치고 전화로 예약한 대구호텔로 내려왔다.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도 방문하고 싶었으나 하회마을에서 50km나  떨어져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와이프가 인터넷 검색하여 저녁 먹으러 찾은 맛집, 식당이름이 이상하다. '밤새 우는 닭'

소문난 집인지 밖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손님들이 아주 많았다.

 

닭고기를 24시간 저온 숙성한 뒤 초벌구이하여 나오는데 숯불에 구워 먹는다.

무척 담백했다. 

 

우리는 오늘하루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마감했다.